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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탈출3 - 예능에서 픽션으로
    영상 2020. 3. 11. 21:42

     

    추리나 퀴즈 등장하는 예능을 매우 좋아한다. 더지니어스, 크라임씬 등 프로그램들은 지금도 새로운 시즌을 기다리고 있을 정도다. 그런 나에게 tvN의 대탈출은 취향 저격 콘텐츠였다. 시즌1과 2를 거쳐 어느새 시즌3으로 돌아온 대탈출의 첫 에피소드는 이번 시즌이 지향하는바를 명확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해줬다. 

     

     

    웃음보다 몰입감에 집중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대탈출 시즌3의 새로운 방향성이 매우 마음에 든다. 시즌3의 변화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예능에서 픽션으로"라고 말할 수 있다. 대탈출 시즌1과 2는 추리요소 보다는 예능적 요소가 강조된 콘텐츠였다. 세계적인 파이터 김동현이 겁에 질리는 모습, 실수를 연발하는 강호동의 모습 등이 폭소를 유발했다. 반면 좀비들로부터 도망치고 연쇄살인마의 소굴에서 탈출하는 동안 시청자들이 스토리 자체에 깊이 몰입하고 함께 생각에 빠질 기회가 많지는 않았다. 스토리와 퀴즈의 유기적인 연결성 보다는 자극적인 소재와 상황, 그 상황에 대응하는 캐릭터들의 반응이 주요 콘텐츠였던 것이다. 시청자들의 역할은 좀비, 엑소시즘처럼 소재만으로도 무서운 상황이 만들어내는 스릴감과 캐릭터들의 유머러스한 모습을 즐기는 것이었다. 

     

    그러나 시즌3의 초점은 조금 다르다. 물론 아직 하나의 에피소드가 방송되었을 뿐이기 때문에 시즌 전체를 논하기에는 이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는 매우 명확하다. 콘텐츠의 핵심이던 캐릭터들의 반응은 잠시 뒷전으로 밀려났다. 대신 미스테리 그 자체가 극의 핵심으로 자리잡았다. 첫 에피소드는 '타임머신'이라는 상대적으로 덜 자극적인 소재를 선택했고, 지난 시즌의 '검은탑'처럼 루즈해질 것이라는 시청자들의 예상을 뛰어넘어 수준 높은 미스테리를 구현해냈다. 캐릭터들이 시간을 넘나들며 단서를 모을 때마다 이야기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 때문에 쌓인 호기심은 적절한 순간 적당한 캐릭터에 의해 풀리며 카타르시스를 자아냈다. 이건 예능의 문법이 아니다. 추리 영화의 문법에 가까웠다. 시즌1, 2와 같은 웃음과 스릴을 기대하던 나는 어느새 스토리에 강하게 몰입하며 캐릭터들과 함께 추리에 참여하고 있었다. 

     

     

    연출된 장면들과 시청자들의 취향 

     

    극이 진행되며 이야기에 대한 실마리가 조금씩 풀리고, 적절한 순간 해소되어 카타르시스를 주기 위해서는 연출자의 개입이 어느 정도 필수적이다. 쉽게 말해 미리 등장 캐릭터들에게 스토리의 일부를 알려주거나 약간의 지시사항을 제공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대탈출3의 첫 에피소드에서는 이처럼 연출된 장면들이 꽤 보였다. 강호동이 '남바완시계'를 특정 장소에 숨기는 의사결정을 별 다른 고민 없이 하는 장면이나 마지막에 유병재가 편지를 남기는 장면 등은 제작진의 사전 개입 없이는 사실상 만들어질 수 없는 장면이다. 

     

    이러한 연출은 분명히 극을 재미있게 만든다. 앞서 언급했듯이 연출자의 의도에 따라 조금씩 실마리를 던지며 미스테리를 전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예인들이 등장해 방탈출 게임을 하는 예능'을 기대했던 시청자들은 이를 '주작'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다. 리얼리티 예능의 모습은 많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대탈출3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은 매우 극단적으로 갈리고 있다. '이거 주작이잖아!'라며 분노하는 시청자들이 있는 반면, 나처럼 캐주얼하게 잘 만들어진 추리 영화를 즐기듯이 시청한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 

     

     

    하이브리드 콘텐츠와 방향 잡기의 어려움 

     

    대탈출은 추리 예능이다. 추리라는 장르와 예능이라는 장르의 하이브리드다. 이처럼 두 가지 다른 것을 섞는 일은 분명한 장점과 단점을 가진다. 추리가 갖고 있는 스릴과 예능이 갖고 있는 유쾌함을 함께 가져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사이에서 밸런스를 제대로 맞추지 못한다면 애매한 콘텐츠가 되어버릴 위험성도 함께 갖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대탈출3가 연출적 개입을 늘리고 스토리 몰입감을 강화한 것이 매우 과감하고 좋은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남은 에피소드에서도 지난 시즌들과는 차별화되는 경험을 잘 만들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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