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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위대한 개츠비 - 낭만의 시대
    영상 2020. 1. 14. 22:26

    개츠비를 연기한 디카프리오

     

    영화 위대한 개츠비는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디카프리오와 토비 맥과이어 등 뛰어난 배우들이 출연하여 열연을 펼친다. 아래 내용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다. 스포일러를 원하지 않는 분은 뒤로가기를 눌러주시면 되겠다.

     

     

    낭만을 긍정하던 시대

     

    최근 몇 년 사이 과도한 감성이나 진지함을 비웃는 신조어가 다양하게 등장했다. '진지충', '감성충', '오그라든다' 등의 표현들은 사람들이 표현하고 싶어했지만 적당한 표현을 찾지 못했던 바로 그 단어들이었고 엄청난 인기를 얻으며 지금은 전국민이 사용하는 표현들이 되었다. 

     

    지금은 자본주의가 모든 것을 흡수하는 시대다. 지난 날 가치가 있었던 모든 이데올로기들은 자본주의에게 흡수당해 진부한 것, 고리타분한 것, 시대에 맞지 않는 것이 되었다. 애국심, 민족주의 같은 것들이 대표적인 사례다. 반면 자본주의는 시간이 가면 갈 수록 세력을 불리며 현대 사회의 부정할 수 없는 시대정신으로 자리 잡았다. 가수들은 돈을 노래하고, 돈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행위는 어느새 비웃음의 대상에서 당당하고 멋진 행위로 인식되고 있다. 

     

    이런 시대에 자신의 감정을 강하게 표현하거나 사랑이나 우정, 충성심 같은 가치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오그라드는' 것이 된다. 이런 오그라드는 감정이 바로 내가 영화 '위대한 개츠비'를 보며 느꼈던 이질감의 정체였을지도 모른다. 소설 위대한 개츠비는 낭만을 긍정하던 시대 1925년에 쓰여진 소설이기 때문이다. 

     

     

    위대함과 순수함 

     

    작품의 주인공 '위대한' 개츠비는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인물이다. 그녀를 위해 암흑가의 세력과 결탁하여 돈을 벌고, 그녀를 위해 엄청난 재산을 소비해가며 성대한 파티를 연다. 베일에 쌓인 인물인 개츠비가 사실은 한 여자를 위해 이 모든 것을 해왔다는 밝혀지는 순간이 감동의 포인트다. 영화는 매우 정교하게 연출되어 있다. 개츠비의 모습을 보여주기 이전에 그의 으리으리한 저택과 성대한 파티를 먼저 보여주어 신비감을 부여했고, 그에 대한 무성한 소문을 자연스럽게 노출하여 기대감을 키웠다. 

     

    영화가 전개되며 데이지를 향한 개츠비의 사랑은 집착적으로 변해간다. 그녀의 연락을 편집증적으로 기다리고, 데이지의 죄를 대신 뒤집어쓰기도 한다. 개츠비가 보여주는 사랑은 극도로 희생적이고 자기파괴적이다. 자기 파괴를 거듭하던 그는 결국 데이지와 무관하지 않은 이유로 인해 살해당한다. 자신을 죽음에 이르게한 사랑에 끝까지 매달리는 개츠비를 보고 영화는 토비 맥과이어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제이(개츠비), 당신은 그 썩은 인간들을 합친 것보다 더 가치 있는 사람이야."

     

    영화는 개츠비의 희생적 사랑과 순수한 마음에 찬사를 보내고 그의 이름 앞에 '위대한'을 붙이며 끝이 난다. 

     

     

    건강한 이기심을 긍정하는 시대

     

    현대는 건강한 이기심을 긍정하는 시대다. 사랑을 위해서든, 국가를 위해서든, 회사를 위해서든 개인이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다. 국가와 회사의 성장을 위해 회사에서 숙식을 하던 스파르타식 근무 방식은 주 52시간 근무제로 대체되었다. 남편과 자식들을 위해 희생하는 아내는 더이상 현모양처가 아니라 착취당하는 여성의 모습이다. 

     

    이러한 시대에 위대한 개츠비가 보여주는 자기파괴적 사랑은 숭고하기보다는 어리석고, 위대하기보다는 신경증적인 모습으로 보인다. 물론 여기서 작품 자체가 가진 객관적인 가치를 논하기는 매우 어렵다. 위대한 개츠비는 1920년대에 쓰여진 소설이고 그 당시 시대에 이 작품은 엄청난 인기를 끌며 누구나 꼭 읽어야 할 명저의 반열에 올랐기 때문이다. 그 시대의 맥락에서 보면 위대한 개츠비는 분명 많은 공감을 얻은 작품이었을 것이다. 다만 지금은 시대가 변했다.  

     

     

    하지만 유행은 돌고 돈다. 시대정신도 그렇다. 지금의 젊은 세대가 아버지 세대를 부정하며 개인주의자가 되었듯, 우리의 자녀 세대는 우리가 가진 냉정함에 지쳐 다시 낭만주의자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 때가 되면 다시 개츠비는 위대해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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